안응모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정치 경력 | 내무부 안응모 장관 별세 이유 배경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이 향년 93세로 14일 서울 옥수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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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응모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정치 경력 내무부 안응모 장관 별세 이유 배경

 

 

내무부 안응모 장관 별세 이유 배경

 

안응모 전 장관은 순경으로 시작해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하며 '경찰의 전설'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고인은 1931년 12월(호적상 1930년 12월) 황해도 벽성군에서 태어나, 월남 후 옹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지 밀양에서 입대해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전쟁 후에는 속리산 화전민으로 생활하다가 1953년 광주에서 철도경찰대 시험에 합격하며 경찰로서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철도경찰대의 해산 후 그는 일반경찰로 전환되어 서울 상도동 지서장, 용산경찰서 교통주임, 미8군 728파견대장 등 다양한 직책을 거쳤고, 1966년에는 총경으로 승진했습니다.

 

 

1968년 월남전 당시 주 남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의 경찰 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 파병된 전두환 당시 29연대장과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 위장간첩으로 몰려 사형된 이수근을 사이공 공항에서 체포하는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경험과 능력은 그를 1982년 경찰 조직의 최고위직인 치안본부장(치안총감)으로 이끌었고,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충남도지사, 조달청장,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게 했습니다.

 

 

안 전 장관은 1991년 명지대학교 강경대 군 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공직에서 은퇴한 그는 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과 회장, 황해도중앙도민회장,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명희(전 단국대 교수)씨와 2남 1녀인 안희관(STL솔루션 대표), 안혜경, 안희돈(건국대 교수)씨가 있으며, 사위 김춘선(ALPS 고문)씨 등이 있습니다.

 


 

안응모 나이 고향

안응모 나이는 1931년 12월생으로 안응모 고향은 북 황해남도 벽성군으로 본관은 순흥 안씨입니다. 

 

 

그는 2024년 8월 14일에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응모 학력 경력

안응모 학력은 해주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단국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국방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1931년 황해도 벽성군에서 태어나 1947년 월남하여 옹진 봉구국민학교 죽교분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밀양에서 육군병원 신병교육대에 입대해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전쟁 후에는 속리산에서 화전민으로 생활하다가 1953년 철도경찰대 순경 시험에 합격하면서 경찰에 입직하게 되었습니다.

 

경찰 생활 초기에는 영등포역전파출소 경무계로 발령받아 노량진역에서 석탄 수송 열차를 감시하는 일을 했으며, 이후 경위로 진급 후 여러 경찰서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왔습니다.

 

1966년에는 총경으로 승진하여 치안본부 외사과 3계장으로 일했으며, 이듬해에는 국제 마약조직을 검거하는 등 경찰 조직 내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1968년에는 남베트남 대사관 주재관으로 파견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였고, 이 과정에서 전두환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찰 내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치안본부장, 서울시경 제2부국장 등을 역임했고, 1982년에는 제7대 치안본부장에 임명되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1983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으며, 충청남도지사, 조달청장, 그리고 국가안전기획부 1, 2차장으로서 공안정국의 실무책임을 맡아왔습니다.

 

특히 안기부 제1차장 재임 시절에는 여러 방북 사건을 처리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1990년에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범죄와의 전쟁'을 지휘했으나,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으로 인해 1991년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 황해도중앙도민회장,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보수 성향의 단체에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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